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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 시간여행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구보는 차창대 가까운 한구석에 가서서 자기는 대체 이 동대문행 차를 어디까지 타고 가야할 것인가를, 대체 어느 곳에 행복은 자기를 기다리고 있을 것인가를 생각해본다’ -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中
도시의 산책자, 구보 씨를 따라 서울의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시간 여행! 모더니즘 계열의 대표적 작가인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은 청계천 천변에 거주하던 구보의 외출부터 귀가까지 경성 산책길을 그린다. 아침 일찍 집에서 나와 전차를 타고 거리를 헤매며 다방에 가서 차를 마시고 저녁 늦게 술집에서 친구를 만나는 구보의 삶은 오늘날 청춘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일본 도쿄에서 유학했지만 일정한 직업 없이 글을 쓰는 26살 청년 구보가 도시를 배회하며 느끼는 소외감과 고독은 70년 뒤, 서울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정서와 크게 다르지 않다. 구보가 걸었던 길을 따라 서울 도심의 모습을 보며 근현대서울의 자취를 찾아보고, 구보가 바라본 1930년대 경성의 풍경은 어떤 모습이었을지 희귀 자료와 특수영상을 활용해 과거의 시대상과 연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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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편 응답하라 청춘 학림다방
‘학림 시절은 내게 잃어버린 사랑과 실패한 쓰라린 후유증 그러나 로망스였다’ - 김지하 시인
1956년 서울대학교 문리대 건너편에 문을 연 학림다방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서울의 중심지 대학로에서 60년의 시간 동안 자리를 지켜왔다. 서울대 문리대 ‘제25 강의실’이라 불릴 만큼 청춘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던 학림다방은 민주화를 열망하는 학생들의 본거지였으며, 이청준 김지하 등 동시대 문인들의 아지트 역할을 했다. 학림다방 계산대에 보관되어 있는 방명록에는 음악·미술·연극·문학 등 예술계 인사들이 남긴 메모가 빼곡히 적혀있다. 10대부터 70대에 이르는 다양한 연령대의 손님들에게 커피와 함께 추억을 파는 학림다방은 사람으로 치자면 올해로 환갑을 맞이했다. 옛 정취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학림다방의 어제와 오늘을 담은 기록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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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편 세상에 하나뿐인 신발 송림수제화
‘발이 불편한 분들에게 송림수제화가 종착역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러기 위해 저도 노력하고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 송림수제화 3대 임명형(53) 대표
1936년 개업한 송림수제화는 올해로 창업 80년을 맞았다. 故이귀석 옹이 일제강점기 때 을지로3가 부근에 문을 연 후 80년 동안 가게 위치가 바뀐 적 없는 송림수제화는 긴 세월 동안 대를 이어 운영되어 왔다. 사람들의 발을 들여다보면 어느 하나 똑같은 발이 없다고 말하는 임명형(53)씨는 한 켤레의 신발을 만들기까지 발 측정부터 재단, 밑창 바느질까지 천 번의 공정을 거친다. 1955년 북극해 횡단 당시 허영호 대장이 신었던 등산화, 1970년대 수제화, 고객들이 보내온 100여 통의 감사 편지 등을 보관하고 있는 송림수제화의 공간을 360도 VR 클립으로 체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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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편 가위손의 전설 성우이용원
“이발은 단지 손님의 머리를 깎는 게 아니라 손님들의 기분을 만져주는 일입니다. 그게 기술이에요” - 성우이용원 이남열(68) 사장
만리재고개에 위치한 성우이용원은 1927년에 문을 연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이발소다. 일제강점기 때 조선 사람으로는 두 번째로 이발 면허증을 취득한 외조부의 이발 기술은 대를 이어 전수돼 성우이용원은 3대에 걸친 가업이 됐다. 현재 성우이용원을 운영하는 이남열(68)씨가 이발사로 살아온 지도 어느덧 54년째. 140년 된 면도칼 등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온 듯 이발의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성우이용원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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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편 신사의 품격 종로양복점
손님 한 분이 오시더라도 가게 문을 열어야겠다. 백년은 채워야 되겠다는 심정으로 이어왔죠. 이대로 물러서면 할아버지, 아버지를 볼 면목이 없으니까요.’ - 종로양복점 3대 이경주(72) 사장
종로양복점은 1916년 창업한 이래 일제강점기부터 오늘날까지 3대에 걸쳐 이어온 양복점이다. 故이두용 씨가 일본 유학으로 배운 양복 기술이 계승되어 3대째 100년 가업으로 이어졌다. 50년은 족히 넘은 재단용 가위와 줄자, 연대를 추정하기 어려울 만큼 낡은 다리미와 일제강점기에 사용한 연호인 ‘소화(1926년)’가 적힌 영수증 등을 볼 수 있는 종로양복점은 한국 양복 역사의 산증인이다. 끊임없이 새로운 패션 아이템들이 진열되고 사라지는 SPA 브랜드가 패션 시장을 주도하는 패스트패션과 달리 맞춤양복은 한 벌을 완성하기까지 열흘이 소요된다. 양복을 맞추러 오는 고객 뿐 아니라 역사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도 의미 있는 곳인 100년 가게 종로양복점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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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편 옛집의 품격 석파랑
도심에 있지만 도심 같지 않은 곳. 석파랑에 오면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왔다고 얘기해요” - 석파랑 김주원(70) 대표
서예가 손재형은 추사 김정희 이후 최고의 서예가로 꼽히는 현대서화계의 대표적 인물이다. 종로구 홍지동엔 손재형 선생이 말년에 작품 활동을 했던 곳인 석파랑이 있다. 석파랑은 흥선대원군의 별장인 석파정 건물 일부를 옮겨온 데서 비롯된 이름이다. 석파정 별당과 조선의 마지막 왕비인 순정효황후의 생가를 옮겨와 복원한 석파랑엔 조선시대 말 왕궁을 짓기 위해 중국에서 들여온 호벽(胡壁)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우리나라 서예계 거목인 손재형이 거주하던 주택이자, 조선 후기 별장 건축물을 유지해온 석파랑에서 전통 한옥의 멋과 구조를 입체 영상으로 감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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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편 아버지의 메질소리 불광대장간
세 번을 찍는다고 해요. 도끼 옆에 무늬를 세 번 새기는데
저의 자신감, 정직함을 나타낸 거예요. 그게 제 상표가 된 거죠.” - 불광대장간 박경원(80) 대표
은평구 대조동의 한 골목에선 매일 아침마다 쇠를 두드리는 메질 소리가 아침을 연다. ‘불광대장간’은 서울에서 수작업으로 물건을 만드는 대장간의 명맥을 이어나가고 있는 몇 안 되는 곳이다. 한 평생 대장장이로 살아온 박경원(78) 씨는 전통 방식으로 연장과 농기구를 만들며 60년 넘게 한 자리에서 대장간을 지켜왔다.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야 사람의 손에 꼭 맞는 물건이 나온다는 박경원 씨의 믿음은 20년의 경력을 가진 어엿한 대장장이가 된 아들에게로 이어지고 있다. 재래식 화덕과 손도끼, 칼, 호미, 망치 등 100여 가지 제품이 진열되어 있는 불광대장간을 통해 옛 추억과 전통의 향수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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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편 108계단의 애환 해방촌
‘놀랍게도 빠른 걸음새로 미끄럽고 좁은 산길을 휙휙 지나간다. 그러면서 동행끼리는 열을 올리며 사업 이야기, 장사 얘기를 하는 것이었다. 파고드는 듯한 눈길, 여자고 남자고 힘찬 걸음걸이. 거친 호흡. 똑같은 표정이 어느 몸에나 있었다.’
- <해방촌 사람들> 中
해방촌은 광복 후 해외 귀국동포와 월남한 실향민, 6.25전쟁의 피난민 등이 임시로 거주하면서 형성된 마을이다. 해방촌이라는 이름은 해방과 함께 북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만든 동네라는 뜻에서 유래했다. 남산 아래 첫 동네인 해방촌엔 일제강점기에 경성호국신사로 올라가던 계단인 108계단이 남아있다. 마을이 형성되던 시기의 주요 골격이 옛 모습대로 유지되어 있는 곳이자 근현대사를 겪어온 서민들의 삶을 간직한 곳인 해방촌에서 주민들이 기억하는 1950~70년대 해방촌의 이야기와 옛 향수를 느낄 수 있는 풍경들을 만난다.